코로나를 지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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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와 함께 한지 3년 정도 의 시간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 처음 코로나가 퍼졌을때에는 정말로 모든 것이 멈춘 듯한 정지를 느꼈는데, 저는 그 사이에 벌써 두 번이나 코로나를 경험하였습니다. 2년 전에 겪은 델타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때에는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는데... 다 피한듯한 오미크론을 부임한지 3주 만에 그것도 첫 부활예배 앞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다른 것보다, 우선 부활주일 예배를 위해 그동안 수고하신 모든 분들이 생각났습니다. 특별히 오랜 시간 수고하신 성가대의 칸타타는 정말로 아쉬웠습니다. 또한 고난 주간 동안 구원의 6하 원칙 시리즈를 마치고 주님의 부활의 기쁨의 날 앞에 또 노회를 위해 음식을 준비하시던 여선교회의 땀방울이 생각났습니다. 한 주 동안 저는 격리하며 집안에 머물며 온갖 생각을 다하게 되었습니다. 담임 목사로 이곳에 온 저희 불찰인 것 같기도 하고 너무 앞뒤 안 가리고 전진한 내 미숙함에 죄 없는 성도들이 아파하고 힘들어하며 염려하던 코로나 잔치를 연 것 같아 죄송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에도 저를 염려하시는 분들 그리고 다른 성도님들을 찾아가 정성스런 음식을 나누셨던 이미은 성도, 김경미 집사님을 생각하면 아직도 우리 교회에는 소외된 이들을 돌보는 온정이 있음에 흐뭇하였습니다. 부족한 제게도 많은 분들이 염려하시고 맛난 음식도 보내주셨고 따스한 위로도 건내주셨죠. 그 사랑은 따스했습니다. 그러나 이때에 저는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던져진 코로나의 퍼짐을 여러분은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시나요? 사실, 코로나를 앓던 저는 육체적 아픔과 절망보다는 왜 하필 이때에 나에게라는 원망의 물음이 더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좀 더 잘해보고 싶었고, 더욱 신 바람나게 부활의 아침을 맞고 싶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앞지르는 나의 욕심 나의 바램이 아니었나라는 자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해야 합니다. 장로교 헌법에서도 “인간에게는 이제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 한 분을 즐거워하며,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하는 언약 안에 살면서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것보다 더 높은 삶의 목적은 없다고 말합니다”(F-1.01) 오늘 저와 여러분 우리에게 목적하는 그 하나님의 선교는 무엇인가요? 내가 원하는 것 내가 바라는 것 주장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선교가 된다 라고 믿나요? 연약한 인간은 오미크론이란 이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바이러스에도 속수무책으로 넘어집니다. 한 명 두 명 넘어져 더 많은 이들이 넘어질 때, 과연 우리는 나를 향한 그분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선교를 다시 조명해 볼 수 있었나요? 코로나는 제게 그 음성을 듣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제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한 분 두 분 그렇게 다시 일어날 겁니다. 그때에 우리 모두가 동일한 하나님의 선교를 꿈꾸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훼잇빌한인장로교회가 우리 앞에 닥치는 모든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여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시는 참뜻을 찾아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모두 어서 쾌차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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